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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thagoras | 2008/03/18 15:3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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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thagoras | 2008/03/18 15:27 | 트랙백 | 덧글(0)

기불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불사이군

이메일 주소가 없어서 트랙백으로 드립니다.
제 블로그 bomber0.byus.net 에 오시면, 무슨 사태인지 알수 있으실 겁니다. 지금 사정이 있어 제 블로그 본진에서 글을 못 쓰고 이곳을 이용합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 머리싸매고 고민하느니, 기불님같은 유명블로거께서 논제를 띄워주시는게 지금 노대통령께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끌어모으는 방법으로 좋을 것 같네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자체가 그 웹사이트가 지향하는 정신을 보여줄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려 합니다.

조만간 문제를 좀더 구체화해서 다시 글을 한번 쓰겠습니다. 운도 한번 띄워주시고, 고민도 해 주시고, 다른 많은 깨어있는 이들의 참여도 독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다시 인사드릴께요.

by pythagoras | 2008/03/17 18:02 | 트랙백 | 덧글(2)

리만의 제타함수 (2) : 수의 체계

리만의 제타함수(1)에서 말한대로, 지금 우리는 리만의 제타함수를 정의하는 여정에 있다. 물론 이 글은 일반인을 염두에 두고 쓰여지는 것이므로, 중고딩때 배운 수학교과과정을 돌아보며, 잘근잘근 하나하나 씹어가면서 가도록 하겠다. 이 여행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일러의 공식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일러의 공식이란,




을 말한다.


이 오일러의 공식이나 더 나아가, 리만의 제타함수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소수라는 녀석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복소수를 알려면 그 전에, 실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제 나는 중고교수학에 있는 모두 쉬쉬했던 비밀 하나를 말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에서는 ‘실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안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나한테 지금 한국에서 사용되는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대충 검색을 해보니, 중학교 3학년 수학교과 과정에 ‘무리수와 실수’라는 단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에 아마 다시 이걸 다루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검색으로 아래와 같은 표 하나를 찾았다. 일반적인 수학 참고서에 정도에 실려있을만한 도표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실 분들을 위하여 설명을 해 보면, 유리수는 분모가 0이 아닌 분수 (정수)분의(정수) 꼴로 나타낼수 있는 수를 말한다. 유리수 = 분수 O.K. 그리고 무리수는 유리수가 아닌 수이다. 유리수와 무리수를 통털어 ‘실수’라 한다. 실수가 그거구만. 끄덕끄덕. 이거면 다 된거 아닌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이건 지금 심각한 결함이 있다.



유리수까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유리수인지 아니까, 안다고 쳐주자. 그러나 “무리수는 유리수가 아닌 수”이다라고 하면, ‘무리수’가 무엇인지 알수 있는가?


가령 우리가 ‘여자’의 정의를 ‘남자’가 아닌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이해가 된다. 왜 이해가 되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리수는 유리수가 아닌 수”라고 할 때, 우리가 과연 ‘수’라는 것을 ‘사람’이란 말을 알듯이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정의한다는 것은 언제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말로 해야하는 것이다. 위의 설명을 다시 읽어보면, 유리수와 무리수를 통털어 ‘실수’라고 하고 있으므로, 여기서의 ‘수’ = ‘실수’ 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니 결국 위의 무리수에 대한 언급은 ‘무리수는 유리수가 아닌 실수’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실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위의 설명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p.s. 이 블로그는 이글루스 테스트용입니다. 본진은 다른 곳에 존재하는 피타고라스의 창입니다.

by pythagoras | 2008/02/22 15:47 | 트랙백 | 덧글(0)

리만의 제타함수 (1)


다음 동영상은 요즘 재밌게 듣고 있는 싸부의 정수론 ‘영어몰입강의’ 의 한 장면이다. 뭘 쓰고 있는 지는 몰라도, 뭔가 웃기는 것은 느낄수 있죠?




칠판에 쓰고 있는 숫자는,

Skewes’ number 라 불리는 것으로, 를 처음으로 만족시키는 자연수의 대략적 크기이다.



여기서 는 x 이하의 소수의 개수를 나타내는 함수(원주율 와는 아무 상관 없음) 이고,



로 정의된다.


소수는 2,3,5,7,11,13,17, … 와 같이 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자연수를 말한다. 이러한 소수는 매우 오래전부터 수학의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19세기말에 소수의 분포와 관련하여, 소수정리(prime number theorem)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소수정리는 x 가 굉장히 클때, x 이하의 소수의 개수는 대략,



정도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른 관점으로 말하자면, 이 소수정리는 큰 자연수 N 이 있을때, N 이하의 자연수가 소수일 확률은 대략



라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확률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역시 x이하의 소수의 개수 에 근접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수학의 미해결 문제 중에 ‘리만가설(Riemann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다. 풀게 되면, 큰 상금을 타게되며, 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는 150년 묵은 악명높은 문제이다. 리만가설은 리만의 제타함수에 대한 추측으로, 제타함수 라는 것이 있다. 이 녀석은 가 1이 아닌 복소수일 경우, 복소수값을 주는 함수이다. 와 같이 짝수이며 음수인 정수는 제타함수의 해, 즉 리만제타함수의 값을 0으로 만든다. 그러면 다른 해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 질문인데, 리만가설이란 바로, 이 녀석들의 실수부가 모두 가 된다는 것으로, 아래 그림에서 점선으로 나타나고 있는 직선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리만가설이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을 물을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이 리만가설은 위에서 언급한 소수정리와 연관되어 있는데, 리만가설은



와 동치로, 리만 제타함수의 해들이 의 크기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하자면, 소수의 분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리만의 제타함수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그 얘기를 안 했다.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앞으로 여러 개로 나누어 쓰도록 하겠다.




p.s. 이 블로그는 이글루스 테스트용입니다. 본진은 다른 곳에 존재하는 피타고라스의 창입니다.

by pythagoras | 2008/02/10 15:41 | 수학 | 트랙백 | 덧글(0)

메르카토르 지도에 얽힌 수학의 역사

메르카토르 지도에 얽힌 공부를 조금 해 보니, 이 지도에 엮인 수학의 역사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사람들에게 한토막 들려주고 싶어졌다. 메르카토르가 1569년에 그의 지도를 만들었을 때, 인류에겐 아직 로그표가 없었고, 미적분학이 없었다. 그 지도에 얽힌 수학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인류가 들인 시간은 무려 백년!


오늘 오후에 한가하게 책을 보며, 잠깐의 계산을 통해, 메르카토르 투영법의 모든 수학을 이해하고, loxodrome이 지도상에서 실제로 직선이 된다는 결론까지 내린후, 나는 알수 없는 거대한 감동에 휘말렸다. 손 위의 아이폰에는 구글맵이 들어있고, 차에 딸린 내비게이터가 길 안내를 해 주는 세상, 하늘을 돌고 있는 위성들이 안내하는 GPS의 시대. 우리가 사는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의 오랜 시간의 헌신과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었구나!


고딩 수학에 나오는 부정적분 중에서 최고 난이도를 하나 꼽자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문제가 17세기 중반의 유명한 미해결 문제였다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됐는데, 이거 풀면, 대학 교수직은 물론이고, 세계에 이름나고, 나라에서는 국가 석학 정도의 대우를 받았을런지. 저를 포함하여 수학을 잘못해서 힘이 든 사람들아, 기운을 냅시다. 아무튼 이 적분 문제가 난데없이 여기에 왜 등장했는가? 이 적분에 메르카토르 투영법이 크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메르카토르 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금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지도에서 중요한 정보가 위도와 경도라는 것이다.



위도는 위의 지도에서 왼쪽의 그림, 즉 적도에서부터 얼마나 북쪽 혹은 남쪽에 있는지를 재는 숫자이다. 영어로는 latitude라고 한다. 같은 위도상에 있는 지역들은 구면에서 원위에 놓이게 되는데, 이 원을 위선이라고 한다.


경도는 오른쪽 그림인데, 영국의 그리니치를 0으로 기준삼아, 얼마나 동쪽 혹은 서쪽에 있는지를 재는 숫자이다. 보다시피, 영어로는 longitude라고 한다. 같은 경도 상에 있는 지역들 은 북극과 남극을 지나는 대원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데, 이 원을 경선이라고 부른다.


지도에서 위선과 경선이 서로 수직인 직선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초등학교에 가면 가르쳐준다. 메르카토르 지도 역시, 위선과 경선을 서로 수직이 되는 직선들로 표현한다.


메르카토르 지도를 그리기 위해 일단, 일정한 간격의 경선들을, 평면에다가 이 일정한 간격만큼의 y축과 평행한 직선으로 옮겨 그린다. 여기까지는 무척 쉽다.


문제는 위도를 나타내는 위선들을 어떻게 지도에 그릴 것인가가 되겠다. 만약에 위도의 간격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지도에 위선들을 x축과 평행한 직선들로 나타내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 그림에서 보다시피, 두 경선 사이의 간격은, 위도가 높아질수록 좁아져 극지방으로 가면 0에 가까워 진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지도에 세로로 그어진 경선들을 그려놨다. 구면에서는 위도가 높아질수록 좁아지는 경선 사이의 간격을, 지도에서는 같게 보이도록 그려놓은 셈이다.


메르카토르 지도에서 원하는 것은 각도를 보존하는 것이다. 각도를 보존하는 것은 국소적인 작업인데, 이 각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소적인 모양을 보존하도록 하면 된다. 위의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위로 갈수록 좁은 경선 사이의 거리를 지도에서는 같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국소적인 모양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가로의 좁은 거리를 더 길게 늘려준만큼, 세로의 길이도 늘려준 비율만큼 더 길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도에 따라 이 비율이 어떻게 변하는가?



위의 그림이 말하는 바는, 구면에서 를 나타내는 위선들의 간격이



만큼의 간격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위도가 높아질수록, 위선들의 간격을 배만큼 더 넓게 해준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식은 극지방으로 갈수록, 그 간격이 무한대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이것이 메르카토르 지도에서 그린랜드가 아프리카와 거의 같은 크기로 나타나는 이유이고(실제로는 훨씬 작다), 극지방을 지도에 표현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주어야만, 국소적으로 지도의 모양이 보존되게 되고, 따라서 구면상의 각도가 지도에서도 보존되게 된다.



메르카토르는 지도를 만들때 어떻게 했는지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았는데, 정밀한 미적분학의 툴이 없었으니, 아마도 실험적으로 간격을 어느 정도 넓힐 것인가를 수치적으로 계산해서 만들었다고 추측된다. 위의 그림과 식은, 1599년에 에드워드 라이트라는 사람이 메르카토르의 지도를 수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에서는 민족의 성웅 이순신장군이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앉아 긴칼 옆에차고 깊은 시름할 때였고, 임진왜란이 끝나 민생이 도탄에 빠졌던 그런 때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라이트의 때만해도 아직 미적분학이 없어서 적분을 몰랐으니, 에드워드 라이트는 위선들의 지도에서의 y축 좌표를,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만약에 위선들을 1도 간격으로 그린다면,






























위도지도에서 y좌표
0도0
1도sec 1도
2도sec 1도+sec 2도
3도sec 1도+sec 2도+sec 3도
4도sec 1도+sec 2도+sec 3도+sec 4도

이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적분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이러한 계산이 담긴 표를 출판한 것이다.


우리 고딩들은 이표가 구분구적법에 의한 정적분문제라는 것을 알텐데- 즉 다음과 같은 표라는 것을!













위도지도에서 y좌표

그러면 그 이후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1614년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견하고, 로그표를 출판한다. 로그표가 있으면, 곱하기를 더하기로 대신할 수 있고, 나누기를 빼기로 대신할 수 있다. 이 생각은 처음에는 매우 바보같아 보이지만, 컴퓨터가 없던 당시, 천문학의 혁명기에, 큰 숫자를 쉽게 다룰 수 있게 해준 위대한 발명이었던 것이다. 큰 수의 제곱근, 세제곱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제곱, 세제곱도 쉽게 구 할 수 있게 된다.


1620년에는 에드문트 군터라는 자가 삼각함수의 로그가 담긴 표를 출판한다.


1640년대, 헨리 본드라는 사람이 라이트의 위도 테이블이




의 값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도대체 이 두 값이 왜 일치하는 것일까? 이 문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당대의 중요 미해결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는 미적분학의 언어가 한참 개발되던 시기였다. 이제 지금까지 한 것을, 미적분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지도에서 발생한 문제가 시컨트 함수의 적분 문제를 먼저 추측한 것이니, 참 재밌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이 적분문제가 위의 의미로 증명되고 출판된 것이 1660~70년대였으니, 정확히 메르카토르 지도로부터 백년이 걸린 것이다.


여러분은 여기까지 읽고 이해하는데 몇 분 걸리셨습니까? 다소 어렵더라도 인류가 이해하는데에 백년 걸린 것이니, 느긋하게 하셔도 될 것입니다. GPS의 시대를 살더라도, 이런 사실들을 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by pythagoras | 2008/01/13 22:13 | 수학 | 트랙백 | 덧글(9)

지도의 기하학




옛날 옛적 2001년에 방송됐던, 웨스트윙 시즌 2의 16화 “Somebody’s Going to Emergency, Somebody’s Going to Jail” 속의 한 장면이란다. 지도와 관련한 사회불평등을 주장하는 단체가 백악관 참모진에게 소위 피터 투영법을 이용한 지도를 소개하는 장면이다.




딱 보게 되면, 굉장히 낯선 느낌을 받게 된다. 아프리카가 왜 이렇게 큰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마도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지도는 바로 이것, 소위 메르카토르 투영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지도이다.



수학과 학부생이 졸업을 위해 꼭 들어야 하는 과목 중에 미분기하학이라는 것이 있다. 학부 미분기하학에서 배우게 되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가우스의 빼어난 정리, 혹은 놀라운 정리(Theorema Egregium)라 불리는 정리이다. 가우스 곡률은 곡면이 얼마나 휘어 있는가를 재는 양인데, 이 가우스 곡률은 그 곡면의 거리와 각도를 재는 것으로 알수 있다는 정리다. 이는 구면의 어떤 부분이라도 거리와 각도가 모두 보존되도록 하는 평면지도를 그릴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구면과 평면의 곡률이 같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데, 구면의 가우스 곡률은 언제나 양수이고, 평면의 가우스 곡률은 언제나 0 이기 때문에, 모순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지도제작의 딜레마를 가져다 준다. 구면을 어떻게 종이위의 지도에 나타낼 것인가? 가우스의 정리에 따르면, 지도를 제작한다면 원하는 성질을 얻는 대신, 무언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위에 올린 첫번째, 피터 투영법으로 그려진 지도는 모양도 왜곡되고, 각도도 왜곡되지만, 상대적인 면적을 보존해서 그리는 방법이다.



메르카토르 투영법으로 그려진 지도는, 면적을 희생하는 대신, 각도를 보존한다. 이 지도는 loxodrome 또는 Rhumb line 이라 불리는 항해에 중요한 선을, 지도상에 직선으로 나타낼 수 있게 해주는, 항해용 지도로 16세기에 제작되었다.


위에 올린 동영상의 주장들은 크게 받아들일 바는 되지 못한다. 지도에는 한계가 있고, 용도에 따라서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르카토르가 오래전에 항해용으로 만든 지도를, 열대지역의 국가의 면적이 작아졌다고 해서, 무슨 서양중심주의라 욕하는건 다소 섣부른 무식한 짓이다. 다만, 수학공부를 통해, 지도 제작에 있는 그 한계를 이해하고, 세계의 모습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겠다. 역시 수학은 킹왕짱, 과학의 여왕.


Rhumb Lines and Map Wars 라는 한국에는 지도전쟁이라 번역되어 나온 책을 읽으며 몇 자 적어보았다.

by pythagoras | 2008/01/13 22:12 | 수학 | 트랙백 | 덧글(0)

다면체에 대한 데카르트-오일러 정리

예전이나 요즘은 어떠한지 모르겠다만은,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배웠는데, 정다면체에 대한 오일러의 정리라는 것이 있다. 정다면체의 점의 개수, 선의 개수, 면의 개수를 세서, (점의 개수) - (선의 개수)+ (면의 개수)의 값을 계산해 보면, 어떤 정다면체인가에 관계없이 2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중딩수학에서는 이것과 관련하여 데카르트의 정리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둘이 수학적으로는 동등한 내용이기에 사실 상관없기는 하지만, 데카르트가 엄연히 오일러보다는 짬밥이 높은데다가, 데카르트의 연구가 있었기에 오일러의 성취도 있는 것이므로, 데카르트에게도 어느 정도 크레딧이 돌아가야 한다고 여겨진다.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프랑스 사람들이라면 데카르트-오일러 정리라고 하지 않을까? 아무튼 오늘은 부족했던 우리 중고딩 수학교육의 구멍을 메꾸려 펜을 들었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볼록) 다각형에 관한 사실 하나는, 다각형의 모양에 상관없이 그 외각의 합은 라는 것이다. 하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실이라 생소한 사람이 많을테지만,




위의 그림에서 a,b,c,d,e가 각 점의 외각들이고, 이 크기를 다 합하면 가 된다는 것이다. 증명은 중딩 사촌동생이나 혹은 조카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데카르트가 발견한 것은, 이 다각형에 대한 사실을 다면체 버전으로 확장한 것이다. 다면체의 한 점에서 외각이라는 말이 가장 적당한 지는 모르겠지만, 한 점에서의 외각이라는 것은 한 점에 모여있는 다각형들의 모든 각도를 더해서, 로 뺀 것을 말한다. 아래의 표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VEFV-E+F한점에서의 외각 A외각의 총합 V × A
정사면체Tetrahedron4644-6+4=2
정육면체Hexahedron (cube)81268-12+6=2
정팔면체Octahedron61286-12+8=2
정십이면체Dodecahedron20301220-30+12=2
정이십면체Icosahedron12302012-30+20=2

위키에서 표를 따다가 필요한대로 좀 수정해 보았다. V-E+F=2 라는 것이 오일러의 정리이고, 맨 오른쪽에 외각의 합이 언제나 가 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정리이다. 그러면 이게 왜 사실일까? 증명은 오일러 정리를 이용하는 쪽으로 생각을 해 보라. 그러면 오일러 정리는 어떻게 증명했나? 그것은 내가 대학교 2학년때 만든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보고 역시 각자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러면 혹 누군가 이걸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알아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겠는가? 사실 살면서 써먹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_- 그래도 굳이 말을 하자면,


가령 정십이면체가 있는데, 갑자기 마음에 충동이 일어 점의 개수를 세고 싶어졌다고 하자.



그러면 점의 개수를 세지말고, 한 점에 정오각형이 세 개 모여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정오각형의 한 점의 내각의 크기가 라는 사실을 이용하면, 한 점에서의 외각이 가 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면 를 이 숫자로 나누면 20을 얻게 된다. 안 세고도 알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데카르트의 정리는 위상적인 성질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꼭 정다면체뿐만이 아니라, 축구공과 같은 일반적인 (볼록)다면체에서도 성립한다.



그러면 축구공에는 점이 몇 개 있는가? 이걸 알고 싶으면, 무식하게 개수를 세다가 헤맬 것이 아니라,

0. 모든 점이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1. 한 점에는 정오각형 하나, 정육각형 두개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간파한 다음,

2. 정오각형 한점 내각 = 108도, 정육각형 한점 내각 = 120도

3. 따라서 축구공 한 점에서의 외각 크기 = 360도 -108도 -120도 -120도 = 12도

4. 데카르트 정리를 이용하여


그러므로 축구공에는 점이 60개 있다!!!! 이것도 배우고 보니 나름 유용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by pythagoras | 2008/01/09 18:53 | 수학 | 트랙백(1) | 덧글(3)

에셔의 예술에 공헌한 수학

에셔의 작품 중에서 대칭과 테셀레이션을 주제로 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모아놓은 미술책 Visions of Symmetry를 읽는데, 그의 예술에 공헌한 수학의 역할이 너무나 인상깊어 몇 자 적는다.


에셔는 평면을 채우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는다.


Filling the plane has become a real mania to which I have become addicted and from which I sometimes find it hard to tear myself away.



나는 평면채우기에 열광적으로 몰입했고, 종종 나를 거기서 떼놓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원래부터 이러하였던 그의 마음에 불을 당긴 것은,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있던 장식문양들이었다. 이런 류의 문양들을 말한다.



이런 반복적인 패턴들이 에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만, 우상을 금지한 이슬람 전통을 따르는 알함브라의 장식들은 거의 추상적인 것들이었으나, 나중 에셔의 작품에는 많은 동물들처럼 살아있는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쨌든 알함브라에서 발견한 패턴들을 공부하며 더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에셔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 것은 바로 수학자 폴리야(G.Polya)의 논문이었다. 에셔가 그 논문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지질학 교수였던 동생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학의 지식이 없던 에셔에게 폴리야의 논문이 이해 가능했던 이유는, 거기에 담겨 있던 폴리야의 다음과 같은 그림때문이었다.



군론이라는 대칭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수학자들은 평면을 채우는 방법이 본질적으로 17가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이 것에 대해서는 Conway와 Huson의 “The Orbifold Notation for Two-Dimensional Groups“이 이제까지 내가 본 최고의 기호 및 증명을 담고 있다) 에셔는 수학과의 이 만남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A long time ago, I chanced upon this domain [of regular division of the plane] in one of my wanderings; I saw a high wall and as I had a premonition of an enigma, something that might be hidden behind the wall, I climbed over with some difficulty. However, on the other side I landed in a wilderness and had to cut my way through with great effort until —- by a circuitous route —- I came to the open gate, the open gate of mathematics. From there, well-trodden paths lead in every direction, and since then I have often spent time there. Sometimes I think I have covered the whole area, I think I have trodden all the paths and admired all the views, and then I suddenly discover a new path and experience fresh delights.



오래 전, 나는 방황 중에 평면의 규칙적 분할이라는 영역에 도달했다. 나는 높은 벽을 보았고, 벽 뒤에 무언가가 숨어있을 것 같은 예감을 가졌기 때문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벽을 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 반대편에서 황무지에 발을 디뎠고, 힘든 길을 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우회로를 통해, 열린 문에 도착하게 됐는데, 그 문은 바로 수학의 문이었다. 거기서부터는 모든 방향의 길이 잘 닦여 있었고, 그 때부터 나는 그곳에서 종종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나는 모든 곳을 밟고, 모든 길을 걸었고, 그 모든 경치를 즐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갑자기 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신선한 기쁨을 경험하곤 한다.


책에는 에셔의 백여개가 넘는 습작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문양들이 참 다양하다. 사자, 사람, 낙타, 여우, 말, 새, 물고기, 나비, 잠자리, 도마뱀, 악어, 딱정벌레, 개미, 게, 꽃, 불가사리, 천사, 악마, 나뭇잎 등등 수많은 가능성이 실험되었고, 이것들이 나중에 그의 실제 발표되는 작품에서도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그야말로 원천기술?





평면의 분할을 마스터 한뒤, 더욱더 다양한 무한의 가능성을 탐색하던 그는 이제 똑같은 크기의 반복이 아니라 점점 작아지는 반복에 도전한다. 초기엔 밖에서 중심으로 가면서 작아지는 경우를 시도하나, 이것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반대로 중심에서 밖으로 가면서 작아지는 것을 원했다. 헛된 시도 끝에 어려움에 봉착한 그에게 다시 돌파구를 만들어 준것은 수학. 이번에는 수학자 콕세터의 그림이었다. 아래것과 비슷한 류의 그림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 부르는 분야에 이런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하여 에셔의 다음과 같은 그림들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수학자들은 그래서 이러한 에셔의 그림들을 무척 뿌듯하게 여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들 다루는 책들 중에는 에셔의 그림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책의 표지가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우리 밖의 나라들에서는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큰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며, 서로를 살찌우고 더욱더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 간다. 가능성이 창창한 어린 고딩들조차도, 문과 이과 예체능으로 나눠 키우는 우리의 풍토와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무얼해야하나.

by pythagoras | 2008/01/08 18:23 | 수학 | 트랙백 | 덧글(0)

원뿔곡선 vs 이차곡선

학창시절을 회고해 보면, 중학교 시절 배운 기하학과 고등학교 시절 수학에 배우는 기하학은 굉장히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가장 큰 차이가 뭔고 하면, 중학교 땐 안 그랬는데, 고등학교 기하학에서는 좌표를 도입해서 이런저런 식을 푸는 것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중학교 기하학은 머리가 필요한데, 고등학교 기하학은 머리 별로 안 써도 된다. 중학교에서는 삼각형과 원이 주인공이었는데, 삼각형은 고등학교 기하학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기하학은 그리스 시절의 전통에서 내려오는 논증기하학(synthetic geometry)이고,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기하학은 데카르트 이후 시대의 해석기하학(analytic geometry)이다. 학생들은 중학교의 논증기하학을 통해서, 처음으로 가정에서 출발하여 결론에 이르게 되는 ‘증명’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고딩의 해석기하학에서는 이런거 없고 그냥 계산만 줄창한다. 왜 이렇게 교과과정을 전혀 연속성없이 단절시켜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이에 대한 아무 설명도 들어보지 못한채 그저 따라가야만 했으리라.


고등학교 수학 교과과정의 핵심에 놓여있던 것은 무엇보다도, 다항식 및 여러가지 함수, 방정식, 그리고 미적분학이 될 것 같다. 기하학은 중심이라기 보다는, 앞에 언급한 것들을 응용하는 실험장의 성격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맨날 문제가 뭐와 뭐의 교점을 구하라, 접선을 구하라 뭐 이런것 아니었던가.


고딩 기하학과 중딩 기하학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림으로써, 즉 논증기하학을 고딩수학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리면서, 다소 어색한 장면들이 연출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려 한다. 고딩수학에서는 이차곡선론을 배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원뿔곡선’ 이란 말을 전혀 안 가르쳐 준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는 교육적으로 재앙에 가깝다. 이론에 통일성이 별로 없게 되고, 역사적으로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적분학을 강조하고 싶어도 최소한 ‘원뿔’은 언급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차곡선이라는 말은, 곡선을 좌표를 통해 다루게 될때 쓸수 있게 되는 말이다. 곡선이 식으로 표현되야, 일차다 이차다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사실 기하학을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았던 그리스 사람들도 이차곡선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식을 통해서 연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차곡선’이라는 말은 안 썼겠지. 그러면 그리스인들의 이차곡선은 무엇이었을까?



그리스인들은 원뿔의 단면을 연구했다. 원뿔을 자를때 얻어지게 되는 곡선을 그들은 ‘원뿔곡선’이라 불렀다. 원뿔속에 우리 고딩들이 지금 배우는 원, 포물선, 타원, 쌍곡선이 모두 한방에 얻어지게 되니, 개념에도 더 통일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우리 고딩 수학에서는 타원의 정의를 ‘두 초점에서 거리가 일정한 점들의 집합’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인들에게는 원뿔의 정의가 아니라 성질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타원은 이미 원뿔의 단면으로 얻어졌기 때문에… 그러면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증명해야 했을 것이다. 어떻게 했을까?


타원이 놓인 단면에서 원뿔에 접하는 두 개의 구를 만든다. 원뿔과 단면이 만나는 두 점을 초점이라 한다.



그렇다면 타원위의 한 점에서 두 초점까지의 거리의 합이 과연 일정할 것인가? 일정하다. 두 거리의 합이 바로 위 그림에서 빨간색파란색 두 선의 길이의 합인데, 이 길이는 타원 위의 점에 의존하지 않고, 원뿔과 두 개의 구의 배치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고딩수학의 정의를 따라도 이것은 타원이 맞다. 멋지지 않는가. 이런데는 식 같은 지저분한거 필요읎다.



무엇을 정의로 삼고, 무엇을 성질로 볼 것인지는 결국엔 취향의 문제이긴 하겠지만은, 나는 이런 접근 방법이 학생들에게 더 관찰과 발견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더 교육적이라 생각한다. 중딩 수학과 고딩 수학을 꼭 그렇게 무자비하게 갈라놓아야 하는 것일까?

by pythagoras | 2008/01/06 21:59 | 수학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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